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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새로운 공간을 약속한다. 문은 공간을 안과 밖으로 구획한다. 내가 있는 곳과 내가 없는 곳,
내가 아는 곳과 내가 모르는 곳, 현재와 미래가 문을 사이에 두고 나뉜다. 저쪽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부재하는
다른 공간이 있고, 문은 나를 부추겨 그곳으로 가고 싶게 한다. 지금 이곳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 문을 연다. 안을 들여다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저편의 공간, 내가 없었던 공간이 일시에 내가 있는 공간으로 되고, 내가 있던 공간은
내가 부재하는 공간, 과거의 공간이 된다. 그곳이 나의 현재, 나의 현실이 된다. 내가 들어선 공간은 이미 내가 꿈꾸었던 유토피아가 아니다.
문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삶에는 다른 선택지 없다.
지금 있는 곳에 그냥 머물거나, 계속해서 다른 문을 열고 새로운 바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일뿐.
— 안규철,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사무소, 워크룸 프레스, 2022, 327p
종종 하나의 문장이 머릿속을 맴돈다. 이미지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조각난 어휘들 사이로 나는 간다.
내가 찾은 것은 언어도 글도 아닌 목소리다. 동시에 엄습해오는 여러 감각, 문법을 뛰어 넘어 속삭이는 목소리를 나는 글의 형태로 옮겨보려고 시도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내게 앞서 말해진 목소리와 그것을 받아쓴 문자 사이의 끝없는 간극이 불러일으키는 현기증이 있다.
하지만 때로 그 현기증은 쓰는 행위에 자유를 준다. 글쓰기란 목표를 찾아 질주하는 경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한없이 폐쇄적인 환경에서, 제한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예를 들자면, 얄루강 철교를 건너는 야간열차의 객차. 예를 들자면, 개인의 일생이라는 섬.
예를 들자면, 미디엄(medium)의 구슬 안에서 일어나는 전 생애.
— 배수아, 「아야미, 움브라 가르텐」, 『올해의 작가상 2023』, 국립현대미술관, 2023, 107-108p
연못에는 푹신하고 축축한 이끼가 깔려 있었다.
토끼들이 빠르게 추락하는 물체를 일제히 쳐다 보았다.
짓이겨진 입술에서는 찝질한 피의 맛과 연못 바닥에 들척지근하게 눌어붙은 낙과 껍질의 맛이 났다.
늦가을 오후의 볕은 열매를 무르익게 한다.
나무와 풀밭, 아파트의 얼룩진 벽이 사과즙 같은 빛으로 물들면 사람들의 얼굴이 사선으로 갈라지고 살찐 토끼들이
나른한 빛 속에 웅크린다. 나는 톨게이트에 집 열쇠를 두고 왔음을 알았다.
— 김연재, 『낙과줍기』, 신촌극장, 2022